<독자로부터의 편지>
마음 맞는 책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책이 나왔다.
행복감을 안고 책으로의 여행길에 오른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장호병 수필가의 책늪에 빠져 산다.
종이책을 포식하니 뇌가 바쁘다. 소화시키느라 정신줄을 놓칠 정도다.
가슴밭도 풍년이다. 영혼이 토실토실해진다.
평론집에 이어 산문집이다.
수필가의 부지런함과 문학적 재능과 열정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책을 쥔다.
'너인 듯한 나'
철학적인 제목이다. 유행가 가사에도 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하는 노래가 한 때 유행했다.
내 맘 나도 모른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머리말부터 맛있다.
환호 속에서 하늘 향해 두 팔 크게 뻗어 올리는 사람을 보면 닮고 싶다.
닿기는 어렵지만 너인 듯한 나가 되리라 속셈을 몇 번이나 해보았다고
고백한다. 누군들 아니그렇겠는가.
너는 또다른 나!
너와 나,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조명 받는 너를 보면 나인 듯하고,
어깨 처진 너를 봐도 나인 듯하다.
너와 나는 이미 우리가 되어 한 우리 속에 있다.
참 따뜻한 단어.우리!
측은지심. 동병상련.역지사지. 이런 사자성어가 뭉퉁거린 말이다.
삶이 아무리 팍팍해도 사람.인. 한자처럼 서로 의지하고 받쳐주면
결코 힘들지만은 않으리라.
수필가의 인간적인 향기에 질화로를 쬐는 듯 하다.
감동이 다복솔이라 모두 드러내기도 벅차다.
그 중에서도 다이돌핀을 흠뻑 내뿜은 몇 가지를 뽑는다.
'이재행 형, 그립습니다.' 소금.소주.잉크를 사랑한 삶이라는
글이다. 가난한 시인과의 아름다운 추억 이야기다.
문학과 우정이 무르익어 새벽녘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싼 것 세 가지를 들려 준 적이 있다.
소금: 한 됫박만 사 놓으면 일 년간은 간 각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소주: 한 병이면 멀쩡한 사람도 머리가 팽 돌지 않을 수 없다.
잉크: 한 병만으로도 시집 몇 권은 거뜬히 쓸 수 있다.
내 말인 듯 공감대 형성이 된다.
가난,술,문학을 사랑하는 시인의 진면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명사다.
나 역시나 가난한 글쟁이라 얼굴도 모르는 이재형 시인이
궁금해진다. 하늘나라에 계신다고 하니 내 맘을 고개를 들어 전하고
싶다. 여기 그런 사람 또 있다고..
여자이기에 술로 지친 삶을 달래지도 못한다.
가난과 문학을 사랑하는 건 남녀 차별이 없기에 맘껏 할 수 있다.
소금. 잉크 예찬론엔 고개방아를 수없이 찧는다.
돈도 씨가 마른다는 말을 절감한 순간이 있었다.
단돈 백원도 없어 집안을 샅샅이 뒤지던 눈물겨운 시간이었다.
그 때 소금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하얀 소금 한 됫박을
사 놓으면 한참 동안 걱정이 없었다.
그 순간 순박한 함민복 시인이 불쑥 떠올랐다.
애써 보낸 시 원고료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잠시 실망했지만 이내 긍정의 시인답게 맘을 고쳐 먹었다.
"그래. 이 돈으로 쌀을 사면 몇 달을 먹으니 그게 어디야.'하고..
나도 힘들 때 마다 돈 보다 양으로 행복을 저울 위에 올렸다.
훨씬 견디기 수월해졌다.
요즘은 잉크로 글 쓰는 시대가 아니다. 컴퓨터로 공짜로 쓰고 있으니
잉크값도 안 들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래저래 고마운 일이 폭죽이다. 문학이 스승이다. 이렇게 작은 행복도
크게 느끼라고 가르친다.
노인과 어른의 차잇점도 기가 막히게 잘 풀어냈다.
그냥 나이만 먹으면 노인에 불과하다. 제대로 나이를 먹어야 어른이다.
어른 노릇하기가 쉽진 않다. 일흔의 나이에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젊은 나이에 어른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먹는다,거기에는 '날로 먹지 말라,체하기 십상이다'란 경고가 들어 있다.
나이, 꼭꼭 씹어서 맛을 음미하며 먹을 일이다.
장호병 수필가는 모태 어른이 아닌가 싶다. 수필가의 책이라면
무조건 읽고 보는 믿음이 생긴 걸 보면 틀림없는 어른이다.
'상화정신, 대구를 넘어 세계로'도 감동적이다.
두류산 인물동산에서 일요일마다 뵙는 이상화 시인이다.
자칭 문학소녀라고 뽐내면서 그 분 곁으로 간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읊조리며 시인의 애국심과 시심을
닮아 보려 애쓴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대구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생전에 향토색 짙은 언어로 시를 썼다. 현실에 대한 강한 인식과 저항 의식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참담한 현실에서 저항시를 쓴 작가는 적지 않았지만
그는 어느 누구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서슬 퍼런 일제 치하에서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
대구야말로 상화 시의 토양이며 상화 시 정신의 원천이라고
윤장근 이상화기념기념사업회 명예 회장은 지적한다. 학업과 중국 주유 등을
제외하곤 거의 고향을 지켰다. 그의 시가 향토적 서정이 짙은 언어들도 가득한
연유다.
상화는 문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요,'빼앗긴 들'이 대구의 어느 지역 들판이 아니기에
대구 사람들만의 상화로 고착시켜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상화를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세계로 놓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세계의 저항시인으로 우뚝 선 연후에 그를 안아야 더 크게
안을 수 있다.
참으로 놀랍다.
그저 역사 속의 대단한 시인이요 애국자로만 알았다.
대구 문학계의 대가들은 큰 차원에서 시인을 평가하고 다시
살리고 있다.
두류산 가는 길에 인물 동산으로 가서 다시 말씀드려야 겠다.
대구 문학계가 시인님을 더 큰 세계로 보내드리려고 준비 작업을 서두른다고..
참으로 행복하다. 세계적인 시인으로 향하는 분을 우리 동네 두류산에서
일요일마다 뵐 수 있기에..
과연 맘에 맞는 책이다.
다른 책에 비해 아담하고 가볍다. 내용은 알토란이다.
문학과 역사 두 마리 토끼를 야무지게 잡을 수 있는 책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애국자가 된 듯 어깨가 들썩거린다.
문학의 키도 몇 뼘 쑥 자란 듯 하다.
정신적 키높이 구두를 신겨 준 장호병 수필가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대구수필, 한국수필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여 『사랑과 이윤』(1992, 공) 『웃는 연습』(1993) 『하프플라워』(2005) 『실키의 어느 하루』(2011) 등의 작품집이 있으며, 창작 이론서 『글, 맛있게 쓰기』는 탈고를 앞두고 있다. 대구예술공로상, 대구수필문학상, 대구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대구수필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 수필과지성 창작아카데미 대표, 도서출판 북랜드ㆍ계간 문장의 주간 겸 발행인, 대구과학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