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철학을 만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생애 어느 순간 철학에 대해 생각한다. 막 의식이 싹틀 무렵 아이는 먼저 주변 세계에 관심을 가진다. 주변 세계에 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쌓이면 사춘기가 되어 자신의 존재에 관해 묻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세계를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지 어떤지 고민하게 된다. 철학 용어로 보면 세계론, 인간론, 인식론의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는 철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세 단계이기도 하다. 사람이 철학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이러한 철학사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방대한 서양 철학사에는 수많은 간선도로가 있지만 큰 줄기는 이 세 개의 대로를 거치면서 오늘날로 이어진다. 인생에 어느 때쯤, ‘철학’의 길로 떠나고 싶을 때, 이 책을 내비게이션 삼아 수많은 철학자와 철학의 갈래를 만나보자. ‘사유의 예술’인 철학을 제대로 즐기며 목적지로 향해갈 수 있을 것이다.
1. 길가메시에서 하버마스까지, 흐름으로 꿰어 읽다
남경태가 쓴 이 철학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보통의 철학사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하는 것과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문자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초기의 철학은 종교의 형태를 취했고 고대의 종교는 오늘날의 그것과 좀 다르게 사회의 조직 원리, 생활방식, 세계관이었으므로 철학의 한 부분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마찬가지 논리로, 현재의 지적 지형과 변화 과정 역시 현재 진행 중인 철학사에 속하기에, 20세기 후반 그리고 현재 생존한 철학자들의 사상까지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철학사를 다룬 책들이 장·절·항목으로 칸막이를 쳤다면 이 책은 해당 철학자의 사상적 궤적은 물론, 동시대 사상이나 다른 시대의 사상들 사이에 연관이 있는 것은 이으려고 노력했다. 가령, 인간은 주어진 현상을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본 후설의 현상학과, 피카소가 그린 최초의 입체파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연결해 사상의 동시대성을 설명하고 있다. 수많은 철학자와 철학의 갈래에 깊이 파고들기보다 구슬을 꿰듯 철학사의 재료들을 꿰어 맞추었다는 데 이 책의 장점이 있다. 그야말로 인류 문명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사의 정리이며, 누구나 한번은 읽을 만한 서양 철학사의 탄생이다.
2. 마침내 ‘사유의 예술’로 철학을 즐기다
한 사람의 전모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을 아는 것이다. 한 나라의 성격을 한눈에 파악하려면 그 나라가 걸어온 자취를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의 내력과 한 나라의 자취가 모여 곧 역사를 이룬다. 이 역사란 현실의 역사와 생각의 역사, 즉 역사와 철학은 가리키는데, 이는 인문학의 대표적인 학문이다. 흔히 인문학은 학문으로서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나 현실적 쓸모가 떨어진다는 오해를 사곤 한다. 그런데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 기반이 넓은 학문일수록 다방면에 걸친 쓰임새가 있다. 실제로 생각을 다루는 학문인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원이 되었다. 정치학, 법학, 경제학 같은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수학, 의학, 생물학 등의 과학도 철학에서 갈라져 나왔다. 따라서 철학의 역사는 인류 문명사의 거대한 축을 형성했다. 이 책은 그런 철학의 실용성을 발견해내고, 구슬을 꿰듯 철학사의 재료들을 꿰어 맞추어 독자가 이 책의 각 부분을 고리로 삼아 철학사 전체를 관통할 수 있게 하였다. 최소한 철학을 어려운 골칫덩이가 아닌 ‘사유의 예술’로 즐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3. 소통하는 인문학자 남경태, 현실의 역사와 생각의 역사를 오가다
보통 역사라고 하면 여러 사건과 수많은 인물이 나오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흔히 말하는 역사가 현실의 역사라면 그 밖에 또 한 보따리의 역사가 바로 생각의 역사, 즉 지성사다. 이 책은 서양 문명사를 구성하는 절반의 역사, 생각의 역사를 일관성의 측면에서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가 중대한 모멘트를 맞았을 경우, 그 영향과 의미는 생각의 역사에서도 생략될 수 없는 부분이기에, 현실의 맥락을 곳곳에서 반영하여 철학사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시기인 르네상스기와 프랑스혁명기를 별개의 ‘Interlude(간주곡)’ 장으로 묶은 것이 그 이유다.
이 책의 이런 장점은 철학과 역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인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종횡무진 오가는 저자의 독특한 지적 편력 덕분에 가능했다. 제법 방대한 이 책이 저자 특유의 쉽고 명쾌한 문체 덕분에 무겁지 않게 다가오는 것도 미덕이다. 저자의 가장 큰 장점은 인문 지식 생태계의 전반을 넘나들며 일반 독자와 쉽게 소통하는 데 있다. ≪누구나 한번쯤 철학을 생각한다≫는 누구나 한번은 알고 싶고 읽고 싶지만, 접하기 부담스러웠던 서양 철학사를 가장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책이다.
1960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에는 사회과학 고전들을 번역하는 데 주력하다가 1990년대부터는 인문학의 대중화에 관심을 두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들을 쓰거나 번역했다. 2014년 12월 23일 작고했다. 《개념어 사전》, 《철학,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동양사》 등을 저술했으며,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빛나는 로마 역사 이야기》,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 《1.5평의 문명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머리말 ‘사유의 예술’, 철학을 즐기자
프롤로그 철학사의 세 줄기
1부 자연과 인간과 신
1장 보이지 않는 것의 힘
밀레투스학파, 헤라클레이토스, 엘레아학파,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불멸을 찾아서|최초의 철학적 물음|만물을 무한히 쪼개면|운동과 변화는 없다|수에서 끌어낸 미학, 철학, 윤리학|본격적인 철학의 시대
2장 자연에서 인간으로
소피스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직업이 된 학문|파국이 빚은 철학의 새 출발|어떻게 살 것인가?|스승이 남긴 숙제|내 안의 진리|철학이 지배하는 나라|이원론의 원조|사본에 불과한 현실 세계|서양 철학의 두 기둥|철학은 상식을 설명해야 한다|목적론의 원조|행복은 성적순|국가는 본능이다|하나의 몸짓에서 꽃이 되기까지
3장 제국의 철학
회의주의, 에피쿠로스, 견유학파, 스토아학파, 플로티노스
불확실성의 시대|쾌락을 통해 행복의 나라로|신 따위는 필요 없다|개 같은 내 인생|제국의 역습|신이 없는 신화|철학자 황제의 치명적인 실수|Cosmos in Chaos|신에게로 한 걸음 더
2부 신학이 세상을 지배했을 때
4장 신을 위한 변명
아리우스, 오리게네스, 펠라기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신흥 권력과 신흥 종교|또 하나의 세계종교|신앙이냐 이성이냐|종합과 타협의 기교|신이 보내는 지혜의 빛|중세의 틀
5장 신학과 철학 사이
에리우게나, 스콜라철학, 안셀무스, 아벨라르, 이븐 시나, 이븐 루슈드,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 윌리엄 오컴
교황과 예언자|아는 만큼 믿자|스콜라에서 스쿨까지|권위가 지식을 낳는다|부활한 사제 대결|신의 존재를 논증하라|아리스토텔레스의 컴백|이슬람 세계의 아리스토텔레스|절충과 종합의 귀재|시대가 요청한 그리스도교의 변호사|토마스의 해법-중용 실재론|존재의 사다리|다시 신의 논증으로|종합 철학의 부활|변방에서 제기된 비판|면도날을 무기로
InterludeⅠ 근대의 문턱에서
미란돌라, 에라스뮈스, 플레톤, 코페르니쿠스, 베이컨
지는 해와 뜨는 해|부활한 플라톤|종교개혁? 교회 개혁!|과학적 이성의 목소리|과학의 보조로 전락한 철학|미술적 감감의 목소리
3부 철학의 새 출발
6장 신학과 철학 사이
데카르트, 홉스, 로크
근대 인식론의 출범|코기토의 탄생|신과 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라|완벽한 이원론|유물론이 통하는 사회|자연 상태: 야성이냐, 야만이냐|자연법의 산물: 국가|에토스와 파토스|로크의 전략: 모르겠으면 나눠라|권력 세습과 재산 상속의 차이|시민혁명의 이념적 근거
7장 파국으로 치닫는 철학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버클리, 흄
철학과 종교의 이단|실체에서 관계로|생산하는 자연|진리기 때문에 진리다|실체의 인플레이션|아름다운 강산|예정조화의 논리학|풍요와 어울리는 상식|눈에 보이는 것을 믿어라|신을 보증인으로 세우다|자아는 없다!|원인도 없다!|파국은 새로운 탄생의 거름
InterludeⅡ 혁명을 선도한 계몽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프랑스의 병|sauvage noble|계약에서 혁명으로
4부 완성, 그리고 창조를 위한 파괴
8장 형이상학의 종점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흄을 돌파하라|주체와 대상의 극적 화해|시인과 마도로스|앎의 한계|도덕을 법칙으로|낭만, 자유, 주체성의 시대|우주를 내 품 안에|역사는 무한히 발전한다?|결론은 이데올로기|본체는 의지다|맹목적인 삶의 의지|고독한 주관
9장 혁명과 실천을 향해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벤담, 밀
행동하는 철학|유물론을 택한 이유|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혁명의 법칙|근대와 현대의 경계에서|자유주의와 부르주아 철학의 궁합
10장 파괴·재편·해체
니체, 프로이트, 후설, 베르그송
강자의 철학|진리는 발명되는 것|몰락하는 이성, 흔들리는 주체|‘나’도 모르는 ‘나’|현실에 잠재된 철학의 위기|주객 분리의 인습을 버리자|Life finds a way|지성은 인간의 불행한 특성|희미해지는 주체
5부 현대냐 탈현대냐
11장 형이상학의 종점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무어, 프레게, 러셀, 카르나프, 비트겐슈타인
다자인의 디자인|다자인의 이중적 존재 방식|존재를 기술하는 언어|자유의 부담|타인은 지옥|신체의 현상학|철학은 상식이다|과학적으로 엄밀한 철학이란|실증적이지 않은 실증주의의 토대|언어는 세계의 그림이다|언어의 의미는 용도에 있다|한계에 이른 언어
12장 인간은 없다
소쉬르, 레비 스트로스, 라캉, 알튀세르
지시 대상이 없는 언어|드러난 것과 숨은 것|중심에서 밀려난 인간|언어는 무의식이다|욕망마저 빼앗긴 주체|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의 결혼|이데올로기와 색안경
13장 미완성의 ‘포스트’
푸코, 들뢰즈/가타리, 데리다,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하버마스
사물이 먼저냐, 말이 먼저냐?|타자의 목소리|아는 것이 힘이다?|생산하는 욕망|욕망의 흐름을 통제하라|분열증의 가속화: 혁명의 길|수취인 불명의 텍스트|형이상학의 해체를 위해|거대 담론 허물기|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주체와 의사소통|끝나지 않은 이성의 기회
에필로그 탈현대, 그 뒤
철학사 연표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