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어쩌면 나는 청년들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BR>;87년생, 밀레니얼 세대 문화평론가가 직접 쓴 가장 깊이 있는 밀레니얼 담론<BR>;</b>;<BR>;대학 시절 《청춘인문학》을 내놓으며 집필활동을 시작해, 《분노사회》 《삶으로부터의 혁명》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등 10여 권의 책을 쓴 문화평론가 정지우가 밀레니얼 세대를 주제로 첫 사회비평 에세이를 내놓았다. 지금껏 기성세대에 의해 주도되어온 ‘청춘 담론’이 여전히 청춘의 실제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87년생 작가가 직접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책뿐만 아니라 신문 칼럼, 팟캐스트, SNS, 다양한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동시대 청년들과 활발히 소통해온 작가가, 자기 세대의 가장 내밀하고도 절실한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를 ‘시소의 세계관’을 가진 ‘환각의 세대’라고 정의하며, 청년의 시선에서 이제껏 없었던 구체적이고도 깊이 있는 ‘밀레니얼 담론’을 만들어낸다. 작가이기 이전에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으로서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섬세한 글쓰기로 진실하게 담아냈다. <BR>;<b>;<BR>;1. 밀레니얼 세대는 어떤 세대인가<BR>;: 꿈과 현실 사이의 분열, ‘환각의 세대’<BR>;</b>;<BR>;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아우른다. 흔히 세대론에서 세대가 10년 단위로 구별되는 것에 비하면 이러한 세대 규정은 그 폭이 상당히 넓은 편인데, 작가는 그 근본적인 이유가 온라인이 삶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커진 데 있다고 본다. 온라인의 본격적인 확산은 유행이나 취향, 관계를 맺는 방식, 세계관 등에서 세대 간의 경계를 보다 모호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1980년대 초반 출생이 온라인을 삶의 일부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세대라는 점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자와 함께 ‘밀레니얼’로 묶일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세계는 밀레니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BR>;<BR>;밀레니얼 세대는 또 다른 맥락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해진 세대, 그에 ‘아프면 환자지’라고 대답하는 세대, 다시 N포세대를 거쳐, 거기에 ‘포기도 선택이다’고 항변하는 욜로 세대와 모두 같은 세대이기도 하다.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가진 게 없다’는 점이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사회의 중심에 서서 시대를 이끌어갔던 기성세대로부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입받았으나, 외한위기와 금융위기, 최악의 청년실업률과 스펙 경쟁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이려는 청년들에게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심어주었다. 작가는 이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극적인 분열을 겪는 이 세대를 ‘환각의 세대’라고 부른다. <BR>;<BR>;“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그래서 어딘지 괴기스러워 보인다. 흔히 청년세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개 절망과 포기로 수렴된다.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로 인해 우울, 좌절, 증오, 혐오 같은 현상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가 늘 문제시된다. 그런데 정작 청년세대가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SNS에는 그런 흔적이 없다. 그곳은 언제나 밝고 희망차고 화려하다. 청년세대에 대한 담론과 인스타그램의 간극은 마치 매트릭스의 밖과 안처럼 극명하다.” _62쪽,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BR>;<BR>;온라인 세계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이미지는 일상에 넘쳐난다. 타인이 속해 있는 저 화려한 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우울감과 소외감을 선사하고, 스스로도 그러한 이미지에 속하게 되길 바란다. 이전 세대가 ‘이 나이쯤 되면 이제 장가가야 하는데, 아이 낳아야 하는데’ 하던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청년세대는 ‘나도 저기 가봐야 하는데, 저걸 가져야 하는데’ 같은 욕망을 느낀다. 이러한 감각은 확실히 기성세대가 삶을 대하던 것과는 다른 감각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결혼이나 육아, 그 밖의 전통적 관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때건 즉각적으로 화려한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인스타그램’으로 대변되는 ‘환각적인’ 이미지들과 청년들이 당면한 열악한 현실 사이의 이 간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청년 담론은 거의 아무것도 설명해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간극이야말로 청년세대가 지닌 딜레마의 핵심이자 청년들이 당면한 가장 절실한 실존의 문제인 것이다. <BR>;<BR>;<b>;<BR>;2. 밀레니얼 세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BR>;: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시소의 세계관’<BR>;</b>;<BR>;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관련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담론의 대부분은 기성세대가 밀레니얼을 관찰하고 그 특성을 정의하는 형식을 띤다. 기성세대는 자기 세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개인주의’나 ‘나 중심’, ‘효율성’ 같은 것을 밀레니얼의 특성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과연 이 세대의 핵심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밀레니얼 세대의 작가 정지우가 말하는 밀레니얼의 핵심 특성은 ‘이중성’이다. 이들은 개개인의 삶의 영역을 엄격히 지키면서도 타인들과의 조화로운 관계도 중시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으려는 특성이 강하다. 모든 가치관은 온라인에서 하나의 상대적인 ‘관점’이자 존중해야 할 하나의 의견이 된다. 작가는 밀레니얼의 이런 세계관을 ‘시소의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BR>;<BR>;이런 이중성은 밀레니얼 삶의 전반에서 나타난다. 어느 한쪽의 가치에 절대적으로 기울지 않고, 어느 하나를 추구하는가 싶으면 다른 한 측면으로 이동하는 식의 ‘시소적인 세계관’이 이들에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는 좋게 말한다면 균형감각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결정장애’적인 특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결코 한쪽으로 온전히 넘어갈 수 없이, 그러한 넘어감이나 치우침 자체에 불안함을 느끼고 다시 곧장 스스로의 위치를 재점검하면서 다른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 근본 바탕은 ‘불안’이다. _38쪽, 〈밀레니얼과 시소의 세계관〉<BR>;<BR>;386세대에게는 민주화가 시대의 화두였고, X세대는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어냈다. 기성세대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어떤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했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처음부터 ‘확고한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작가는 세상을 단일한 이념 아래서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프레임 자체가 점차 무용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하여 하나의 가치 기준만을 강요하는 ‘정답 문화’, 입시로 줄 세워 다양성을 증발시켜버리는 집단주의는 애초에 밀레니얼의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개인과 집단이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집단주의, 밀레니얼은 이 ‘새로운 집단주의’를 학교에서, 직장에서, 일상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실제로 구현해내고 있는 세대인 것이다. <BR>;<BR>;<b>;<BR>;3. 청년의 통찰로 말해져야 한다<BR>;: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옹호<BR>;</b>;<BR>;그간 책뿐만 아니라 신문칼럼, 팟캐스트, SNS, 다양한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자기 세대와 활발히 소통하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작가는, 청년의 시선으로 청년만이 쓸 수 있는 가장 내밀하고도 깊이 있는 밀레니얼 담론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크게 세대, 젠더, 개인과 공동체라는 세 가지 화두로 수렴되는데, 바로 이 세 가지야말로 지금 한국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이자, 청년들이 당면한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왜 노력을 ‘노오력’이라고 조롱하고 세상이 이미 ‘수저’로 결정되어 있다는 회의주의에 빠져 있는가? 젊은이들은 왜 이 세계의 거대한 불평등에 분노하지 않고, 자기가 속한 작은 영역의 공정성만을 요구하는가? 젊은 남성들은 왜 ‘가진 자’인 상류 계층의 같은 남성을 증오하기보다는 여성을 증오하는 쪽을 택했는가? 작가는 그 속에 속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알기 어려운 밀레니얼의 세계관에 대해, 최소한 한 번쯤 그들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고 함께 해결해나갈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BR>;<BR>;내가 아는 한 이 시대에 관해 어떤 통찰을 얻고자 한다면, 노교수보다는 젊은 교수에게, 그보다는 30대 시간강사에게, 또 그보다는 20대 취업준비생에게 묻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 어찌 보면 이 시대 전체, 이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이나 시야는 이미 기성에 진입한 존재들보다는 기성에 진입하기 이전의 존재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청년들은 기성의 존재들보다 훨씬 예리한 감각과 렌즈로 사회 전체를 바라보며, 세상 전체 혹은 미래 전체와 통째로 맞서면서 그것을 응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입장에 서 있다. _79쪽, 〈청년의 통찰로 말해져야 한다〉<BR>;<BR>;그러나 작가는 이 밀레니얼 담론을 개념이나 분석에 근거한 사회과학서의 형식이 아닌,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에세이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으로서, 남성으로서, 또 사회의 구성원이자 개인으로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한 것들, ‘나’로 시작하는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결국 동시대인들에게 가장 진실하게 가 닿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실체적이며 유의미한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시작된 변화는 이미 우리 삶의 스타일, 우리 사회 전체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작가는 말한다. 이제 청년의 목소리로 말해져야 한다. 청년의 시야로, 청년의 통찰로 말해져야 한다.
고요하고 단단한 내면을 바탕으로 글을 써 온 작가이자 문화평론가. 소설을 쓰다가 인문학 책을 썼고, 조금 더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싶은 마음으로 에세이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등 이 있다.
작가의 말 | 낯선 것에의 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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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1. 환각의 세대: 우리가 원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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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나의 시대, 나의 세대, 나의 삶
\r\n밀레니얼과 시소의 세계관
\r\n우리는 신념을 소비한다
\r\n저출생은 거대한 가치관 변화의 문제다
\r\n우리는 왜 연애를 갈망하는가
\r\n블루보틀에서
\r\n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r\n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옹호
\r\n아재들의 전성시대, 청년들의 절망시대
\r\n우리는 노력을 조롱하는가
\r\n청년의 통찰로 말해져야 한다
\r\n청년들은 독서를 하지 않는가
\r\n세상이 좋아질 것 같은가
\r\n대학 도서관을 둘러싼 상처들
\r\n불안에는 비용이 든다
\r\n기성세대의 ‘정의’와 청년세대의 ‘공정’
\r\n공정성, 그 작은 세계의 룰?
\r\n공부는 신분을 바꾼다
\r\n절망과 욕망 사이: 교육과 공정성
\r\n청년 문제의 착시
\r\n실패로부터 성장한다는 막연한 믿음에 대하여
\r\n‘포기’라는 트렌드
\r\n타인들의 세상, 청년들의 세계, 〈버닝〉
\r\n청춘을 뒤로하고 꿈을 택하는 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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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2. 젠더에 대하여:
\r\n여성에 관해 덜 말해질 때란 결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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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어머니의 삶으로부터
\r\n가부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의 한국, 청년, 남성
\r\n이것은 ‘인간’에 관한 문제다: 미투운동에 관하여 1
\r\n갈라파고스 섬에서의 투쟁: 미투운동에 관하여 2
\r\n디지털 성범죄: 싸워야 할 것은 일상에 스며 있다
\r\n이 ‘가벼운’ 범죄로
\r\n식욕은 ‘채우는’ 것인데, 왜 성욕은 ‘푸는’ 것일까
\r\n그것은 성적 대상화가 아니다
\r\n강남역 이후의 세계와 폭력의 그물망
\r\n버릴 수도 없으면서 사랑할 수도 없는
\r\n나는 사립 남자고등학교를 나왔다
\r\n가장 형식적인 것들이 가장 실체적인 것들로, 〈콜레트〉
\r\n형법 269조와 낙태죄의 논리
\r\n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r\n아이 없는 세계와 ‘나의 권리’
\r\n비행기 타는 부모가 환영받는 방법
\r\n바로 곁에 있는 사람, 〈82년생 김지영〉
\r\n바람이 있다면, 기억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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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3. 개인과 공동체: 우리는 서로 뒤섞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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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선의상실
\r\n분노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
\r\n숭고한 두 여성을 본다
\r\n‘나의 권리’는 절대 진리인가
\r\n부동산이 우리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
\r\n타인을 낙인찍는 쾌락에 관하여
\r\n정치적 올바름과 ‘가치’에의 혐오
\r\n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용납할 수 없다는 것
\r\n편견은 끝을 모르고 영혼을 파고든다, 〈그린북〉
\r\n폭력은 돌고 돌아 어느 가정의 아이에게
\r\n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원더〉
\r\n인문학 열풍이 남긴 것
\r\n대학원생들에게 지도교수의 권력이란 절대적이다
\r\n정의에의 열망은 부정의의 증거다
\r\n가족의 울타리, 사회의 집
\r\n그렇게 절실한 서로의 쓸모, 〈나, 다니엘 블레이크〉
\r\n애도의 법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