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랑이 서로의 폐허를 덮어주고 <BR>;시원의 얼굴을 건져낼 수 있을까<BR>;<BR>;‘정념情念’의 작가 전경린 신작소설<BR>;비스듬히 어긋난 연인 사이에 흘렀던 사랑 이야기<BR>;<BR>;마음을 열고 한 사람을 받아들이면 <BR>;다른 사람이 동시에 다가온다. <BR>;동시성의 법칙은 연애 월드에서 꽤 알려진 징크스이다.</b>;<BR>;<BR>;파스칼은 말한다. 정념情念은 지나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 사람은 지나친 사랑을 하지 않을 때는 충분히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정념의 작가’, 혹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의 신작 『이중 연인』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섬세한 문장과 강렬한 묘사로 삶과 사랑의 양면성을 그려내는 작가 전경린의 이 번 신작 『이중 연인』은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문학동네) 이후 이 년 만이며, 장편소설로는 열세 번째 작품이자 고품격 로맨스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나무옆의자 ‘ROMAN COLLECTION’ 시리즈의 열세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BR>;전경린의 장편소설 『이중 연인』은 사랑이 서로의 폐허를 덮어주고 시원의 얼굴을 건져낼 수 있는지를 묻는 소설이다. 작가는 비스듬히 어긋난 연인 사이에 흘렀던 어찌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가을 하늘에 새떼처럼 풀어놓았다. 아울러 『이중 연인』은 어떤 여자에게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떤 여자에게는 예사로운 일인지도 모를 ‘이중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부주의하게 겹쳐버린 약속, 중복되는 사랑 이야기인 셈이다. <BR>;<BR>;<b>;부주의한 사랑, 사랑도 그네를 타는가</b>;<BR>;<BR>;“힘들거나 불편하고 슬프고 불안한 건 사랑이 아니야. <BR>;사나워지는 것도 사랑이 아니야. <BR>;힘들어지면 언제든 그만두도록 해.”<BR>;<BR>;아트 매거진 기자인 나(함수완)는 늘 기사마감에 시달리지만 유명인사의 생일 모임에서 미술 평론가이며 큐레이터인 이열을 만났다. 외국어를 쓸 것 같은 인상이었다. 뭔가 궁리하는 듯한 눈빛과 사탕을 물고 있는 듯 무표정한 입 주변이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다. 모임이 끝나고 치근거리는 보석 디자이너와 국회의원 비서를 따돌리고 두 사람은 함께 택시를 탄다. 아울러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웠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열이 한 말들이 차례로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갑시다’에서부터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까지. 봄의 솜털같이 여린 눈과 뜻밖의 낮은 웃음소리도. 처음 본 남자의 마음이 그녀의 몸에 물컹 닿았던 것이다.<BR>;설마 그럴까, 하는 사이에 한 여자가 울기 시작한다. 이열과 나의 세 번째 데이트 때 만난 여자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굵은 줄기의 눈물, 마치 수돗물을 튼 듯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말 그대로 눈물샘이 터진 것이다. 일행과 술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던 여자가 이제 막 술집에 들어선 이열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모두에게 노출된 장소에서 펑펑 우는 여자. 그녀는 연극배우 심보라였다. 즉흥적으로 심보라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 세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식사와 함께 와인을 마시던 중 5년 만에 만났다는 보라와 이열은 무반주로 왈츠를 춘다. 춤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두 마리 새가 노는 것 같았다. 혼몽한 잠결에 이열과 보라가 복도 끝 방으로 서로를 밀며 들어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아니 본 것이 아니라 눈을 감은 채 귀로 들은 것 같았다. 복도의 벽에 부딪치고 스치는 두 몸, 문에 부딪치는 쿵 하는 소리와 웃음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 웃음소리……. <BR>;지방출장을 끝내고 나는 동료 장과 황경오의 대학 동기 모임에 어울린다. 세 명과 일 관계로 알게 된 장은 그들과 온도가 약간 달랐다. 모임에서 방송국 피디 출신이자 아마추어 등산가 황경오는 “아, 난 오늘 첫눈에 반했는데.”라는 말로 나를 도발한다. “나가서 둘이 한잔 더 할래요?”라는 말도. 그러나 방송국 일로 이 년 전에 만난 적이 있던 황경오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모른 척하고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에 대해 “그거 사실입니다. 오늘이 아니라 이 년 전에.”라는 또 다른 도발. 황경오는 감정을 극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BR>;눈을 떴을 때, 곁에 황경오가 잠들어 있었다. 나는 전날 아침에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이 년 전에 본 남자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내 코트와 발목 스타킹과 옷가지들이, 그의 외투와 양말과 옷가지들이 방바닥에 던져져 있었다. 기적인지, 재난인지 판단할 수 없었을 정도. 마음을 열고 한 사람을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이 동시에 다가온다. 동시성의 법칙은 연애 월드에서 꽤 알려진 징크스였던 것. 오랫동안 아무도 없다가, 저 먼 천체에 별자리들이 이동하듯 남자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식이이었던 것이다.<BR>;방으로 초대해달라는 나의 요구에 대해 황경오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방이 없는 사람처럼, 아내라도 있는 사람처럼. 황경오의 방에 다녀온 바로 다음 날 나는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된다. 사무실에선 사적인 통화를 자제하는 오전 열 시였다. 전화기 속의 여자는 내게 대뜸 반말을 했다. 황경오의 전처였다. 자살시도도 했었다는 그녀. 그녀는 “그 방에 다신 가지 마.”라고 협박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그 방에선 그이와 붙어먹지 말란 뜻이야.”라는 말을 남긴다.<BR>;사랑도 그네를 타는가. 순수한 남자와 육감적인 남자의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 인생에서 사랑과 투자, 두 가지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엄마는 정작 두 가지를 다 했고 둘 다 실패했다. 나는 적지 않은 용돈을 엄마와 여동생을 위해 보내야 했다. 나는 엄마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인생에 안도했다. 결혼 생활 십일 년 만에 아버지가 죽은 뒤 몇 번이나 배가 뒤집히고 표류했지만 엄마는 매번 구조되어 새 배에 올라탔다. 동시성의 법칙 앞에서 당황하게 된 나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운명처럼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데…….<BR>;<BR>;<b>;사랑의 달콤함, 난폭함, 허망함에 관하여</b>;<BR>;<BR>;삶이란 강철과 시멘트와 유리로 지어진 냉혹한 인공물이었다. <BR>;그에 비하면 사랑은 거품이고, 구름이고, 종이배이고, <BR>;새의 깃털이고, 아이스크림이었다.<BR>;<BR>;『이중 연인』은 저자의 설명처럼 서로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삶에 대한 관심, 끊을 수 없는 그리움과 특별한 관대함이 테두리를 이어 가지만 중심은 비어있는 사랑의 이야기다. 사랑의 달콤함, 난폭함, 그리고 허망함에 관한 보고서다. 작가 전경린은 슬픔과 행복을 은밀하게 견디며 변화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내성적인 무늬가 이 세계의 아름다움인 것을 겨우 예감하고 있다. 그 중심에 『이중 연인』이 있다. <BR>;<BR>;비스듬히 어긋난 연인 사이에 사랑을 담아 보았다. 서로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삶에 대한 관심, 끊을 수 없는 그리움과 특별한 관대함이 테두리를 이어 가지만 중심은 비어있는 사랑. 그 중심은 폐허일까, 시원일까. 이제 사랑을 배우며 서로의 폐허를 덮어 주고 시원의 맑은 얼굴을 건져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봄의 갯버들 같은 눈빛이 돌아오기를 간청하며 마지막 장을 썼다. _‘작가의 말’ 중에서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염소를 모는 여자』 『바닷가 마지막 집』 『물의 정거장』 『천사는 여기 머문다』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아무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황진이』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엄마의 집』 『풀밭위의 식사』 『최소한의 사랑』 『해변 빌라』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등이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로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으로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붉은 리본』 『나비』 『사교성 없는 소립자들』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21세기문학상, 대한민국소설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현진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연인 . 7
\r\n작가의 말 .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