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도망 중이었다.
나 자신에게서.
스파이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매혹적인 퀴어 성장 소설
군사 쿠데타가 임박한 1966년의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냉전 시대 스파이 소설.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던 레즈비언 스파이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퀴어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동성애가 금기시되던 시절, 스스로를 숨기고 위장하는 기술을 체화해야 했던 동성애자의 삶을 본질적으로 비밀스러운 스파이의 세계와 절묘하게 병치해 평론가들로부터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스파이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의 신예 작가 로잘리 크넥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CIA 요원인 베라 켈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센트랄 대학교 심리학부에서 수업을 들으며 캐나다에서 온 대학원생 행세를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인들을 도청하고 교내의 급진적인 학생들을 염탐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날 때까지 KGB와 공산주의 세력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이다. 마침내 쿠데타가 일어나지만 이후의 상황은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치닫고 베라는 일생일대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소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한 축으로, 베라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게 되기까지의 삶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베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독자들은 베라 켈리의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그녀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나는 늘 도망 중이었다.
나 자신에게서.
스파이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매혹적인 퀴어 성장 소설
1966년, CIA 요원인 베라 켈리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한 아르헨티나에서 파견 근무를 시작한다.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려는 KGB와 공산주의 세력을 감시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이다. 그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센트랄 대학교 심리학부에서 수업을 들으며 캐나다에서 온 대학원생 행세를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인들을 도청하고 교내의 급진주의 학생들을 염탐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녀는 꽤 유능하고 성실한 요원이다. 쿠데타가 일어난 뒤의 탈출 계획도 이미 다 세워놓았다. 그러나 실제로 쿠데타가 일어나자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급변하고, 베라는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 옴짝달싹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스파이 소설의 줄거리다.
그러나 막상 이 소설을 여는 것은 열여섯 살 시절의 베라 켈리이다. 그녀는 자주 못 보게 된 절친한 친구 조앤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하다 신경 안정제를 과다 복용하고 병원에서 깨어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펼쳐지는 사건이 소설의 한 축이라면, 그녀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게 되기까지의 삶이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셈이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이렇게 교차 서술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경 안정제를 과다 복용한 열여섯 살 소녀는 어떻게 훗날 스파이의 삶을 살게 되었을까? 소설은 베라의 다양한 과거 모습들을 조금씩 던져준다. 메릴랜드 소년원 시절의 베라,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레즈비언 바를 드나드는 베라. 독자들은 베라 켈리의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그녀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될 것이고, 그녀가 위기를 극복하고 무사히 돌아오게 되기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냉전 시대 스파이 소설에 참신하고 독창적인 해석을 선보이다!
고독하고 삐딱한 생계형 여성 스파이의 탄생
팜 파탈, 여전사, 비련의 여주인공. 여성 스파이를 생각할 때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이다. 여기 완전히 다른 유형의 스파이가 있다. 베라 켈리는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도 아니고 신체 능력이 특출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타입도 아니다.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녀는 고독하다.
베라는 생계형 스파이다. 애초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월세 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열악한 경제 사정 탓이 컸다. 그녀가 하는 일은 도청을 하고 대화를 글로 옮겨 적는 등의, 위험도는 낮지만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기술직 업무가 대부분이다. 저자인 로잘리 크넥트는 이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된 전형적인 여성 스파이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섹시하게 포장된 스파이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그저 자기 일을 하는 평범한 직업인으로서의 스파이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이다. 책이나 영화에서 늘 화려한 주인공들에 가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무대 뒤의 평범한 사람들. 이 책의 주인공인 베라가 바로 그렇다. 베라 켈리는 총보다는 전자 기기를 잘 다루고 첩보 활동의 최전선에서 적과 두뇌 싸움을 하기보다는 대학가의 허름한 바에서 대학생들과 어울리는 척하며 정보를 알아내는 쪽이다. 탁월한 미모의 소유자는 아닐지 몰라도 마음만 먹으면 매력적이 될 수 있고 사리 판단이 빠르며 때로는 교활하기까지 하다. 혈혈단신이라 잃을 것도 없다. 자기 자신밖에는.
슈퍼히어로급 주인공과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어쩌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기캐’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이 책이 스파이 스릴러로서 선사하는 현실적인 긴장감과 서스펜스는 상당하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클라이맥스로 우리를 데려간다.
스파이 소설을 퀴어화시키다!
서정과 통찰이 빛나는 퀴어 성장 소설
베라 켈리는 성 소수자이다. 그녀는 열여섯 살 때 자신의 절친한 친구 조앤에 대한 감정을 깨닫고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50, 60년대는 동성애가 금기시되던 때이다. ‘풍기 단속반’이 활동하며 뉴욕의 게이 바들을 불시 단속하던 시절. 『베라 켈리는 누구인가?』는 이런 억압적인 시대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며 살았던 한 여자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왜 주인공이 퀴어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로잘리 크넥트는 이렇게 말한다. 스파이가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다가 주인공이 레즈비언이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이다. 그 세대의 대다수 평범한 중산층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삶을 택했지만, 베라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삶이 허락되지 않거나 본인이 관심을 갖지 않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억압적인 시대 분위기 속에서 베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꽁꽁 숨기며 살았는데, 그런 비밀스러움과 위장은 스파이의 자격 요건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물론 그 당시는 CIA가 동성애자를 고용하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스파이란 것도, 레즈비언이란 것도 들키지 않기 위해 늘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면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회피한다. 『베라 켈리는 누구인가?』는 그런 베라가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 딜라일라북스에 대하여
딜라일라는 삼손을 파멸로 몰고 간 구약성서 속 인물 델릴라의 영어식 이름입니다. 1960년대 말 가수 톰 존스가 부른 팝송 ‘딜라일라’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요부의 대명사이자 배신의 아이콘으로 거듭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딜라일라북스는 '딜라일라'라는 이름에 내포된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거두고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자는 의미에서 여성 작가와 여성주의 책들을 전문적으로 출판하고자 합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뉴욕 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세사르 아이라의 『재봉사와 바람』을 영어로 번역했고 센터 포 픽션Center for Fiction에서 떠오르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풀브라이트 영어 보조 교사로 일했다. 2016년에 데뷔 소설 『입체 지도Relief Map』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