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해 주세요. 딸을 죽인 사람이 저입니까?”
일본소설의 대명사로 통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기대작은 단연 『인어가 잠든 집』
- 국민일보 강주화 문학 담당 기자
2019년 상반기 국내에서 영화 개봉 확정
어느 날 가족을 덮친 비극
“미즈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혼한다.”
IT 기업 ‘하리마 테크’를 운영하는 가즈마사와 그의 아내 가오루코는 가즈마사의 외도를 이유로 이혼에 합의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 미즈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그때까지 결행을 잠시 미루기로 한다. 어느 날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부모 면접에 참석하러 간 그들에게 갑작스러운 비보가 날아든다. 딸이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는 것.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두 사람에게 의사는 사실상의 뇌사를 선언하고, 조심스럽게 장기 기증 의사를 타진한다.
“이 아이는 살아 있어요!”
딸의 죽음이라는 비극에 더해 가혹한 선택의 기로에 선 두 사람. 고민 끝에 부부는 만약 미즈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면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명으로 어디선가 고통을 겪고 있을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할 거라며 장기 기증을 결정한다.
미즈호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온 가족이 병실을 찾고, 부부는 함께 미즈호의 손을 잡는다. 그 순간 부부가 동시에 미즈호의 손이 움찔한 것처럼 느낀다.
결국 아내 가오루코는 장기 기증을 거부하고 미즈호를 집에서 돌보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부부는 이혼 결정을 번복하고 미즈호의 연명 치료에 들어간다.
딸을 지키려는 금단의 선택, 사랑인가 광기인가
어느 날 회사에서 제품 개발 회의에 참석한 가즈마사는 하리마 테크가 주력하고 있는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BMI) 기술, 즉 뇌나 경추가 손상되어 몸을 가눌 수 없는 환자로 하여금 뇌에서 보내는 신호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술을 자신의 딸에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는 그 기술의 개발자인 호시노를 자신의 집으로 보낸다.
호시노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은 미즈호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첨단 장치에 의해 숨을 쉴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자기 자극 장치를 몸에 연결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팔다리를 움직이기에 이른다.
‘잠자는 듯’ 여전히 아름답기만 한 딸을 향한 가오루코의 집착은 점차 도를 넘어서게 되고 그녀의 광기는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조금씩 지치게 만든다.
미즈호의 동생 이쿠토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오루코는 미즈호를 휠체어에 앉힌 채 데려가고, 이쿠토는 반 아이들로부터 ‘죽은 누나’를 입학식에 데려왔다며 놀림을 받는다.
가즈마사는 가오루코의 집착이 진정 딸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아내의 자기만족에 불과한지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대답해 주세요, 딸을 죽인 사람이 저입니까?”
결국 이쿠토의 생일에 친구를 초대하라는 엄마의 말을 거부한 이쿠토는 친구들이 누나가 죽었다고 한다며 엄마에게 대들고, 그 말에 흥분해서 난동을 부리던 가오루코는 무슨 생각에선지 갑자기 경찰서에 전화해 집에서 누군가 칼을 휘두르고 있다고 신고한다.
잠시 후 달려온 경찰들 앞에서 가오루코는 딸 미즈호의 가슴에 칼을 겨누고, 자신이 이 아이의 가슴에 칼을 꽂으면, 그래서 아이의 심장이 멈춘다면 자신이 딸을 죽인 것이 되느냐고 묻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충격과 감동의 휴먼 미스터리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인어가 잠든 집』은 사랑하는 딸에게 닥친 ‘뇌사’라는 비극에 직면한 부부가 겪는 가혹한 운명과 불가피한 선택, 그리고 충격과 감동의 결말을 그려낸 휴먼 미스터리다.
이 소설은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넘어선 집착과 광기를 과거 어느 문학 작품보다도 절절하고 가슴 아프게 그려낸 한편의 아름답고도 장엄한 서사시이자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묘사한 고전 비극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201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발매 한 달 만에 27만부가 팔리는 진기록을 세웠고, 2018년 5월 발간된 문고본은 6개월 만에 54만8000부가 팔렸다. 이는 2018년 한 해 동안 일본에서 출간된 문고본 판매 랭킹 2위로, 이 문고본이 5월 발간된 것을 감안하면 그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18년 제31회 동경 국제 영화제 특별 초대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지금까지 20여 편의 영화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 연극, 만화 등으로 만들어졌다. 『인어가 잠든 집』 또한 2018년 일본에서 영화화되어 제31회 동경 국제 영화제에서 특별 초대작으로 상영됐으며, 가오루코 역의 시노하라 료코는 제43회 호우치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도 수입이 확정되어 올해 상반기 중 상영될 예정이다.
사회파 작가가 도전하는 ‘삶과 죽음, 사랑’의 정의
‘미스터리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초기의 본격 미스터리에 이어 최근에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휴먼 미스터리’를 많이 발표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원전을 비롯한 환경 문제, 빈부 격차, 노인 문제, 학교 폭력, 경제 범죄 등 비정하고 부도덕한 일본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한 비판 의식이 녹아 있어 그를 이른바 ‘사회파’작가도 부르기도 한다.
『인어가 잠든 집』에서 작가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과 죽음,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라는 난제에 도전한다. 아울러 장기 이식을 둘러싼 도덕적, 법률적 문제에 깊숙이 천착한다. 인간의 죽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누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사람의 장기 이식을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지, 장기 이식은 뇌사 상태인 기증자 본인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아닌지 등을 독자로 하여금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딸을 향한 엄마의 애절한 사랑을 묘사한 대목들이다. 특히 딸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고 있는 어머니가 딸과 이별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기 힘들다.
어느 날 새벽, 이상한 기척에 눈을 뜬 가오루코는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딸이 자신의 곁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가오루코는 헤어질 때다, 하고 깨달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이제 가는거니?”
응, 하고 미즈호는 대답했다. 안녕, 엄마. 건강하게 잘 지내.
(본문 중에서)
오늘의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 공학과를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마침내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5년 『방과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1999년 『비밀』로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을, 2006년에는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제3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과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중앙공론 문예상을, 2013년 『몽환화』로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에는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가면 산장 살인 사건』『살인의 문』『백야행』『기린의 날개』『한여름의 방정식』『신참자』『탐정 갈릴레오』『예지몽』『다잉 아이』『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학생가의 살인』『오사카 소년 탐정단』『방황하는 칼날』『천공의 벌』『붉은 손가락』 등이 있다.
1장 오늘 밤만은 잊고 싶어
2장 숨 쉬게 해 줘
3장 당신이 지키려는 세계는
4장 책을 읽어 주러 오는 사람
5장 이 가슴에 칼을 꽂으면
6장 누가 그때를 정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