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특히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데요.
정말 혐오스럽습니다.”_조던 피터슨
‘정치적 올바름’은 한국의 인터넷 공론장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단어다. 기본적으로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태동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글로벌한 세계의 현실에서, 더욱이 미국의 영향을 심대하게 받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점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당장 인터넷 게시판의 설전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그 근저에 ‘정치적 올바름’ 개념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정치적 올바름’이란 대체 무슨 뜻일까?
‘정치적 올바름’은 영어로 ‘Political Correctness’로서 소수자들을 차별, 배제하는 언어 사용 및 표현을 지양하자는 신념, 혹은 그에 기반한 사회운동을 말한다. 흔히 PC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불구자’ 대신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에스키모’ 대신 ‘이누피아크’, ‘후진국’ 대신 ‘개발도상국’,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 ‘결손가정’ 대신 ‘한부모 가족’ 등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현재 ‘정치적 올바름’은 단순한 언어순화 운동 차원을 넘어서, 영상이나 게임 등에서의 균등한 역할 배분, 혹은 진학이나 취업, 승진 등에서의 소수자 우대 정책 등으로 확장 적용되고 있다. 성별, 인종 등 여러 집단적 정체성이 합류하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이른바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 일체를 뜻한다.
“당신은 고약하고 화가 난 백인입니다.
확실히 지독하고 심술궂네요.”_마이클 에릭 다이슨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인류가 응당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이 책에서 각각 여성과 소수 인종을 대표하는 패널인 골드버그와 다이슨은 ‘정치적 올바름’이 거대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방편이며, 따라서 인류 진보의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두 패널은 현재 PC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의 분위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역사적, 사회적 특권층이 뻔뻔하게도 그들의 이기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반동이며,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필경 우스꽝스럽게 회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찬성 팀이 보기에, 이런 역사의 낙오자들은 ‘계몽’해서라도 역사의 도도한 물결로 이끌고 가야 할 망아지들이나 다름없다.
반대 팀인 조던 피터슨과 스티븐 프라이가 단지 ‘이기심’을 드러내는 주장을 했다면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미는 반대 논거는 퍽 묵직한 대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피터슨은 “표현의 자유 없이, 진정한 사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프라이는 SNS상의 침묵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검열당하는 듯한 느낌에 대해 토로한다. 이른바 ‘어떤 발언이 PC하지 않으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이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막는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그 토대부터 허물어뜨릴 수 있다.
아울러 피터슨은 ‘정치적 올바름’이 서구 문명의 위대한 산물인 개인주의를 위협한다고도 주장한다. PC 운동은 정체성 정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이 정체성 정치는 근본적으로 개인을 지우고 집단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피터슨이 보기에, 이런 집단주의적 관점 아래에서는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 표현 등이 불행스럽게도 억압당하고 만다.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은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현실과 맞물려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PC는 표현의 자유, 열린 토론, 자유로운 사상 교환의 적일까? 아니면 소외된 집단을 배제시키는 지배적인 권력에 맞서 평등하고 정당한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누군가는 정치적 올바름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자유롭고 열린 토론을 옥죄며, 불필요하게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소외 집단에게 발언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준을 만드는 것이 언론의 자유를 넓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첨예하게 맞서는 주장들 사이에서 독자들이 각자의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길 기대한다.
토론에 대하여
이 책은 2018년 5월 18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 ‘멍크 디베이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멍크 디베이트는 피터 멍크와 멜라니 멍크가 설립한 자선단체 오리아 재단의 프로젝트로, 반년마다 세계가 당면한 주요 공공정책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 세계적인 포럼이다. 그간 패널로 스티븐 핑커, 토니 블레어, 헨리 키신저, 말콤 글래드웰, 니얼 퍼거슨, 알랭 드 보통, 폴 크루그먼 등 수많은 명사가 참여해왔다. 이번 ‘정치적 올바름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토론 역시 현지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세계적으로 핫이슈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데다, 각각의 패널들 역시 쟁쟁했기 때문이다. 방청객 3,000명이 토론 현장을 빼곡하게 채웠으며, 미국과 캐나다에도 C-SPAN과 CPAC을 통해 방송되었다.
논평에 대하여
한국어판 부록으로 임명묵의 글 ‘왜 지금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인가’를 수록했다. 본 토론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논의 전개가 돋보인다. 토론 패널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에 집중했다면, 논평자는 해당 논쟁이 이루어지는 맥락을 다룬다. 포퓰리즘의 부상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어떻게 PC 논쟁을 첨예하게 촉발했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특히 논평자의 약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지역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으로, 엄청난 독서력을 바탕으로 참신한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인터넷 뉴스 채널 〈슬로우 뉴스〉에 다양한 주제로 원고를 쓰고 있으며, 〈서울신문〉 ‘2030 세대’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PC를 둘러싼 문화 전쟁이 20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측면이 있는데, 해당 주제를 20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도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맞다, 그르다를 따지기 이전에 한국의 시민으로서 정치적 극화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 극화가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념 전쟁의 맥락에서 벌어진다면 더더욱 우려스럽다. 미국인이 아닐지라도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이들은 힐러리 클린턴의 낙선에 좌절했을 것이고, 만약 유럽연합이 시행하는 여성/소수자/다문화에 관한 진보적인 정책을 소개하는 트윗을 본다면 ‘좋아요’를 찍을 것이다. 반면 역시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이들은 유튜브에서 조던 피터슨이 페미니스트 앵커와 논쟁하는 영상을 보며 ‘좋아요’를 찍을 것이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항하는 다른 영미권 식자의 영상에 자막을 입혀 번역을 할지도 모른다. 이런 대립구도에서는 한국인 혹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내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된다.
필자가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이유는 역사적 선례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이슬람 세계의 세속주의-이슬람주의 갈등이 이와 놀랍도록 유사한 구도로 전개되었다. 수도를 비롯한 대도시에 거주하는 진보적 고학력자들은, 다수의 의견과 상관없이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종교 교리의 사회 침투를 막는 세속주의 법안을 지지했다. 반면 고등교육에서 배제되어 온, 농촌이나 대도시 빈민가 사람들은 ‘보편 인권’을 보장하는 세속주의 법안이 스스로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출할 권리를 막는다고 느꼈다. 이들은 훗날 이슬람주의라는 정치 이념을 만들어내어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세속주의자들에 대항하기에 이르렀다(이란과 터키에서는 이 시도가 성공했다).
사회에서 종교의 위치를 놓고 둘러싼 이 갈등은 국경을 가로질러 초국적 정체성을 만들어냈고, 실질적으로 터키, 이란, 아랍의 세속주의자들은 자국의 이슬람주의자들보다 세속주의자들끼리 ‘서로’ 더 잘 공감했다. 이런 단층선은 1970년대 이래로 이슬람 세계의 국내 정치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자국 사회가 타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에 아주 민감해졌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1979년 이란의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 혁명을 일으키자 터키와 아랍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은 대거 동요했으며, 세속주의 성향의 군부는 더욱 큰 탄압을 가했었다.
작금의 서구 사회가 물론 저발전 상태에 있는 중동 지역과 온전히 등치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종의 유사성은 분명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국의 “빻은” 인간들보다 서구의 개명된 이들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 혹은 자국의 “PC충”보다 조던 피터슨의 팬들에게 더 우애를 느끼는 사람들은 서구에서 벌어지는 가장 최신의 뉴스를 한국 웹으로 퍼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다. 작년에 있던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었는가? 이런 논쟁이 생산적 대립구도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국제적으로 연결된 미디어 환경은 오히려 진영의 극화만 계속해서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비생산적 대립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최근에 서유럽과 북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의 마비와 기능부전이 우리에게도 다가올 가능성이 충분할지도 모른다.”_203~205쪽
토론토 대 심리학과 교수, 전 하버드 대 교수
혹한으로 유명한 캐나다 앨버타 주 북부의 황량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거친 환경에서 성장했다. 접시닦이, 주유소 주유원, 바텐더, 요리사, 양봉업자, 석유 시추공, 목공소 인부, 철로 건설 인부, 운전사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자랐다.
1982년 앨버타 대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고 나서 1년 동안, 당시 냉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유럽을 여행하며 전체주의와 세계 대전이 유럽에 남긴 깊은 상처를 확인했다. 이를 계기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연구하기 위해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1991년 맥길 대에서 임상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하버드 대 심리학과 교수로 임용돼 1998년까지 6년간 재직했고, 최우수 교수에게 수여하는 ‘레빈슨 교수 상’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시절 매일 3시간씩 짬을 내 집필한 첫 책 《의미의 지도》를 1999년 출간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이 책은 종교 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명저로 평가받았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토론토 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토론토 대 학생들에게 ‘내 인생을 바꾼 교수’로 뽑힐 만큼 인정받고 있다.
2013년부터 강연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채널은 현재 151만 명의 구독자와 누적 조회 수 7000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영미권 최고의 질의응답 사이트인 ‘쿼라(Quora)’에 올린 그의 답글은 3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가장 조회 수가 많은 답변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이트에 올라온 ‘누구나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소중한 것 40여 개의 목록을 답글로 제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 40여 개의 목록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2018년 출간한 두 번째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출간 즉시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주요 국가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중국, 독일,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등 39개국에 판권이 판매되었으며, 7개월 만에 판매 부수 200만 부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국 공영방송국 채널4 뉴스 앵커 캐시 뉴먼과의 인터뷰는 800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봤는데, 이는 채널4 뉴스 역사상 최다 시청자 기록이다. 이 영상은 이후에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한국에서도 100만 조회 수를 넘어설 만큼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몬트리올, 런던, 더블린 등 북미와 유럽의 55개 도시에서 100회가 넘는 유료 강연회를 진행했는데 대부분 매진 사례를 기록할 정도로 구름 관중을 모았다.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저서 외에 100여 편이 넘는 심리학 논문에 저자 또는 공동 저자로 참여했고, 특히 성격 심리학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UN 사무총장 직속 지속가능한 발전 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수천 명의 우울증, 강박증, 불안증, 조현병 환자들의 심리 치료를 진행했으며, 전 세계 60여 개국 수천 명의 기업가들의 강점 파악과 인성 계발을 도왔다. 토론토 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신화 강의는 13부작 텔레비전 시리즈로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송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온라인 정신 건강 프로그램 ‘www.selfauthoring.com’은 오프라 매거진 <오>와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NPR)에서 특집으로 다룬 바 있으며,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과거의 문제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가 만든 또 다른 온라인 사이트 ‘www.understandmyself.com’은 이용자들이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인성 검사를 제공해 호평을 얻고 있다.
1부 토론 전 인터뷰
스티븐 프라이와의 대화
조던 피터슨과의 대화
마이클 에릭 다이슨과의 대화
미셸 골드버그와의 대화
2부 토론
정치적 올바름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마이클 에릭 다이슨, 미셸 골드버그
아니다: 스티븐 프라이, 조던 피터슨
3부 토론 후 인터뷰
스티븐 프라이 & 조던 피터슨
마이클 에릭 다이슨 & 미셸 골드버그
한국어판 부록
왜 지금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인가